새로운 뼈대와 디자인, 넘쳐나는 장비. 볼보의 베스트셀러 XC60이 매력 덩어리로 돌아왔다. 하룻밤 만에, 환골탈태한 XC60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V60이 또 안줏거리로 올랐다. 20년 지기 친구 녀석과 술 한잔 기울일 때마다 매번 나오는 그 이름. 차를 바꾸고 싶다는 친구의 투정 섞인 푸념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흘려들을 수 없었다. 차에 별로 관심도 없던 녀석에게, 왜건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열변을 토한 게 바로 나였기 때문. 특히, 왜건 명가 볼보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었다. 이제 막 신혼을 벗어나 첫째를 계획하고 있는 친구에게 볼보 왜건의 전통과 성능, 실용성과 안전성에 대해 끊임없이 주입식 교육을 한 결과였다.
친구의 푸념은 이랬다. 왜건 좋은 건 알겠는데, V60의 오래된 인테리어가 거슬린다는 것. 볼보에 대해서 들은 얘기가 쌓이고 쌓일수록 친구의 기대치는 높아졌고, 2010년에 나온 뒤로 큰 변화 없이 수명을 이어온 V60에 만족할 수 없었던 거다. 게다가 최근 등장한 90 클러스터 라인업(XC90, S90, 크로스 컨트리)의 감각적이고 세련미 넘치는 디자인을 본 터라, 친구의 관심은 온통 매끈하게 잘빠진 차세대 볼보에 쏠려 있었다.
사실 녀석이 얘기는 안 했지만, 지난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등장한 신형 XC60을 본 뒤로 왜건에 대한 관심이 퍽 줄어든 것 같았다. 나 같아도 그럴 만했다. 요즘 SUV 인기가 최고를 달리는 데다 정말 왜건을 꼭 사야겠다는 게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인기 없는 왜건보다는 SUV를 사는 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었다. 더군다나 XC60은 2009년 이래 지금껏 전 세계를 통틀어 100만 대 넘게 팔리며 볼보 브랜드 이미지를 이끌어온, 베스트셀링 모델 아니던가. 이쯤 되자, 신형 XC60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했다.
신형은 구형보다 길이와 너비를 각각 45, 10mm씩 늘이는 대신, 높이는 55mm 낮췄다. 이 정도로는 기대만큼 역동적인 자세가 나올 수 없었다. 휠베이스를 2865mm로 기존보다 무려 90mm나 늘인 덕분에 짧은 프런트 오버행에서 비롯한 스포티한 인상은 물론, 이전보다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지금 트렌드에 걸맞은, 이상적인 비율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 바탕에는, 볼보가 90 클러스터를 위해 만든 SPA 플랫폼이 있었다.
그릴과 붙은 토르의 망치. 인상이 선명해졌다
XC90보다 크기만 작고 비슷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더 스타일리시한 면이 살아 있었다. 신형 XC60의 외관을 빚은 이정현 디자이너의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가장 집중한 부분이 XC90과의 차별화다. XC60은 더 스타일리시하고 우아하며, 다이내믹한 표현에 초점을 맞췄다.” 매끈한 표면을 더듬으며 차를 한 바퀴 돌아보자, 그가 추구한 XC60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의외로 실내는 따뜻하고 포근한 볼보의 품 그대로였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핵심은, 이것저것 더해서 변화를 주는 게 아닌, 덜어냄의 미학. 단순하면서도 사람이 보고 사용하기에 가장 편하며 색다르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다. 최근 들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단연 최신 볼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XC60 역시, 누가 타도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9″ 터치스크린 안에 조작 기능을 대부분 쓸어 담았다
자연 속에 있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나뭇결이 살아 있는 우드 트림은 볼보의 장기 중 하나. 스웨덴 해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드리프트 우드를 다듬어 넣은 대시보드 가운데, 9″ 터치스크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전 바둑판 배열 방식 버튼 구조는 쓰는 데 불편함이 없었지만, 보기엔 그리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새로운 볼보는 온갖 기능을 터치스크린 안에 쓸어 담아, 깔끔하고 쓰기 쉬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마련했다.
볼보가 만든 시트는, 그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다
볼보답게, 뒷좌석에 탈 이들을 위한 배려도 꼼꼼하다. 차 안에 질 나쁜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걸러주는 실내 공기청정 시스템을 앞뒤 좌석 모두 마련해뒀고, XC90과 크로스 컨트리와 똑같은 사이즈의 파노라마 선루프는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했다. 좌우 뒷좌석 온도를 따로 설정할 수 있는 독립식 공조 장치는 물론이다. 친구네 부부가 아이를 낳는다면 생길, 이래저래 수많은 아이 용품을 넣을 공간도 충분했다.
기본 505ℓ,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1432ℓ까지 늘어나는 트렁크 공간 외에도, 뒷좌석 밑에 태블릿 PC처럼 크기 작은 물건을 간편히 넣을 수 있도록 별도의 수납 공간까지 챙겼다. 게다가 트렁크 입구를 이전보다 132mm나 낮게 설계해 크고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하게 만드는 등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로 가득했다.
다이얼을 돌리면 돌릴수록, XC60의 진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꽤 오랜 시간 공들여 살펴보느라, 촬영 팀이 기다리고 있는 걸 까먹었다.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종로와 을지로 북새통을 지나,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해야 했다. 이동할 경로 내내 잔뜩 막혀 있을 길을 지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졌다. 욕을 덜 먹으려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국내에서도 여기에 푸른빛 폴스타 배지를 넣을 날이 오기를
신형 XC60은 4륜구동을 기본으로,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아우른 320마력짜리 가솔린 엔진 T6 모델과 190마력짜리 디젤 엔진 D4 모델 둘로 나뉘어 국내에 들어왔다. 시승차는 D4 AWD 모델. 시내와 고속도로 어디든 1750rpm부터 쏟아져나오는 40.8kg·m의 토크를 이용해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모델이건만, 꽉 막힌 퇴근 시간의 서울을 통과하는 동안 성능을 맘껏 발휘할 기회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흐름 따라 가고 서기를 반복할 뿐.
이때를 놓치지 않고, ‘2020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0명’을 목표로 볼보가 열심히 개발 중인 자율주행 및 안전 장비 등 운전자 지원 장비를 요긴하게 써먹었다. 편한 사용법을 추구하는 건 이 부분에서도 마찬가지. 그저 스티어링 휠 왼쪽의 파일럿 어시스트 버튼을 가볍게 눌러 속도를 맞추면, 앞차와 좌우 차선을 감지하며 XC60 스스로 나아갔다.
원래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릴 때 쓰는 게 좋지만, 볼보의 수준 높은 반자율주행 장비 파일럿 어시스트는 이런 길 위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앞차 따라 멈췄다가 다시 출발할 때, 리셋 버튼을 눌러 기능을 다시 켜면 그만이었다.
너만 똑 떼어다 내 귀에 꽂고 싶다
특히, 신형 XC60의 파일럿 어시스트 II는 개선된 최신 버전으로, 앞차가 없어도 차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향과 제동을 스스로 하며, 반대 방향 또는 좌우 뒤쪽 사각지대에 있는 차와 부딪칠 위험이 있을 경우 사고를 방지하도록 도와주는 똑똑한 존재. 에코 모드로 돌려 기름값을 아끼는 동시에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과 싸우는 동안,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콘서트홀로 변한 차 안과 달리 바깥에서는 야단법석을 떨며 교통 체증이 이어지고 있었다.
XC60은 오프로드보다 도심 풍경에 녹아드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SUV였다. 그렇게 달리던 중, 분명 저 앞에 신호등이 초록색이었는데 횡단보도까지 거리가 애매하게 남았을 때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고민하느라 속도를 늦추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빨간불에 맞춰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려는 찰나, 난데없이 사람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마 옆 차로에서는 사람이 급하게 뛰어드는 걸 보고 미리 속도를 늦췄을 테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변한 상황.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미안하다며 손을 슬쩍 들고는 건너가버렸고,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건 순전히 볼보의 전매특허이자, XC60이 갖춘 긴급 제동 시스템 시티 세이프티 덕분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졸다가 멈춰 있는 앞차와 부딪칠 뻔했는데, 그때 타고 있던 볼보 V60이 스스로 멈춘 덕분에 가까스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은 도움을 받았다. 차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말이다.
밤새 촬영을 마치고 시승차를 반납하러 서울로 돌아가는 길. 이미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출근 중인 차들이 하나둘 도로 위에 나타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조금이나마 달리면서 XC60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해야 했다. 바로, 달리기 실력 말이다. SPA 플랫폼의 혜택은, 고스란히 최신 볼보의 주행 감각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건 앞 더블 위시본, 뒤 인티그럴 링크의 서스펜션 구조. XC90은 에어 서스펜션을 끼워 한결 푸근한 승차감과 부드러운 핸들링 특성을 보여줬지만, 국내에 들어온 XC60은 몸값과 차급을 고려해 에어 서스펜션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해외와 달리, 유압식 댐퍼와 스프링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오히려 이게 XC60의 역동적인 성격을 강조하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언제나 푸근했던 XC90과 달리 더 바닥을 움켜쥐고 달리며 자극을 더했고, 코너를 만나도 구형보다 매끈하고 날렵하게 돌아나갔다. 비록 최고속도는 205km/h에 머물렀지만, 트랙을 달릴 게 아닌 이상 그보다 더 바라지 않아도 좋았다. 일상적으로 다닐 때는 넉넉하고 여유롭게 힘을 발휘했고, 언제나 든든한 주행 실력으로 풍요로운 삶을 뒷받침할 능력이 충분했다.
맙소사. 휠 디자인 실력도 물이 올랐다. 시승차는 19″ 휠
오랜 시간에 걸쳐 XC60에 대한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술잔이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친구의 마음은, 벌겋게 변한 얼굴만큼 이미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오매불망 신형 V60이 나오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완전히 새로워진 XC60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친구에게, 나도 더 이상 왜건을 강요할 수 없었다. 실은 나도 하룻밤 만에 XC60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으니까. 술병이 좀 더 쌓이자 친구가 XC60으로 결정했다며 호들갑을 떨길래, 집에 가기 전 마지막 조언과 본심을 전했다. “이봐, 친구.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출시하면 직접 시승해보고 마음을 정하라고. 사게 되면 나도 좀 태워주고 말이야.”
XC60은 볼보의 최신 반자율주행 시스템 파일럿 어시스트 II를 품었다. 스티어링 휠 왼쪽 버튼을 2번 누르면, 앞차를 따라 혹은 스스로 달린다. 기술 완성도가 대단히 높지만, 아직은 운전자가 두 손 놓고 달릴 수준은 아니다. 볼보 또한 기술을 맹신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모든 게 안전을 위해서다.
지난 2014년 볼보는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 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가솔린과 디젤 모두 같은 2.0ℓ 4기통 엔진으로 통일하며, 8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하는 것. 성능에 따라 3, 4, 5, 6, 8로 나뉘는 트림명을 부여하며 작명법을 다듬었다. XC60은 T5부터 T8, D4와 D5로 나뉘지만, 국내엔 T6와 D4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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