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벨라, 21세기 프리미엄 중형 SUV의 끝판왕

이름마저 매력적인 네 번째 레인지로버 벨라.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심에서 형제들의 부족함을 메우며, 더욱 완벽한 레인지로버 가문을 완성했다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민담을 엮어 만든 작품 <신데렐라>에는 아주 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한 요정이 나타나 호박은 황금 마차로 그리고 큰 쥐는 마부로 만들어 신데렐라를 무도회장으로 안내하는 대목 말이다. 벨라의 럭셔리한 운전석에 앉아 도로를 내려다보니, 마치 무도회장으로 떠나는 신데렐라가 된 양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엔트리 모델 가격이 취득세와 등록세를 포함하면 1억 원이 넘으니, 이만하면 황금 호박 마차 아니겠는가).

실제로 보면 더욱 선명하고 럭셔리한 듀얼 모니터

벨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호박 마차는 아니다. 다양한 첨단 기능과 강력한 성능을 지닌 속이 꽉 찬 호박 마차다. 특히 외관은 호박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만큼 세련되고 모던한 모습이다. 플로팅 루프와 클램셸 타입의 보닛, 힘 있게 솟아오르는 웨이스트 라인 등 레인지로버 특유의 실루엣은 그대로 유지했다. 거기에, 웨이스트 라인부터 뒤로 가며 좁아지는 디자인으로 우아하면서도 스포티한 이미지를 더했다. 또한, 평소에는 보디에 숨어 있다가 잠금을 해제하면 스르르 등장하는 플러시형 도어 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지만 큰 변화는 벨라에 역대 랜드로버 중 가장 효율적인 다이내믹스 수치인 0.32cd를 선물했다. 또한, 벨라의 모든 모델에는 LED 헤드램프가 올라가는데, 램프 안을 자세히 보면 작은 네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이렇게 ‘네모네모’하게 나뉜 헤드램프는 각각의 모듈을 개별적으로 제어해 최적의 빛 분포를 유지한다.

신데렐라 호박 마차 내부도 이렇게 럭셔리했을까?

푹신한 가죽 시트가 유혹하는 단정한 실내는 심플하면서도 럭셔리한 분위기다. 2874mm의 넓은 휠베이스 덕에 뒷좌석 공간도 여유가 넘친다. 40:20:40 비율로 분할된 뒷좌석은 접으면 최대 1731ℓ까지 짐을 실을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번 실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터치 프로 듀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아래위로 나뉜 넉넉한 크기의 10″ 스크린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선명한 화질을 자랑한다. 특히, 화면 상단으로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며 하단 스크린에는 음악 메뉴를 띄우는 등 효율적으로 화면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터치스크린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운전하며 원하는 메뉴를 빠르게 찾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행여나 이 럭셔리한 호박 마차에 흠집이라도 낼까, 스티어링을 잡은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큰 몸집도 몸집이지만, 다른 기자들과 나란히 대열을 유지하며 시승해야 했는데, 같은 조로 편성된 상위 라인업 모델들이 속도를 올릴 때면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승차는 D240 엔진을 얹은 R-dynamic SE로, 2.0ℓ 터보 디젤 엔진을 올려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51.0kg·m를 낸다. 0→100km/h까지 도달하는 데 7.3초. 서스펜션은 호박 속살만큼 부드러웠다. 미처 피하지 못한 움푹 팬 아스팔트를 지나도 살짝 꿀렁거릴 뿐이다. 속도가 100km/h가 넘어가도 엔진음 한 톨 들어오지 않는 정숙한 실내에는 바람 소리만 윙윙거린다. 2톤이 넘는 몸집으로 차선을 바꿀 때는 호박 마차 묶은 줄을 잘라낸 한 마리 말처럼 빠르고 민첩했다.

봉긋 솟아오른 웨이스트 라인과 뒤태가 매력적이다

앞차와 간격이 제법 벌어져 속도를 올려 코너에 진입했다. 중간쯤 건설 현장 트럭에서 떨어진 흙과 자갈이 보였다. 동승석에 탄 파트너가 “브레이크, 브레이크!”를 외치는데, 때는 이미 늦었다. 하지만 벨라의 바퀴는 미끄러지는 기색도 없이 흙과 자갈을 지르밟고 코너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 정도 흙과 자갈은 벨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험로 주행 성능은 랜드로버가 차급이나 성능에 관계없이 챙기는 기본 중의 기본. 뒤 디퍼렌셜(차동 제한 장치)을 잠글 수 있고, 노면에 맞는 아이콘만 고르면 차의 설정을 알아서 바꾸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 Ⅱ가 기본이다.

벨라에 올라간 다양한 기능 중 가장 호기심을 끄는 건 자동 비상 제동 장치(AEB)다. 5~80km/h에서 추돌 위험을 감지하면 운전자에 경고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실제 도로에서 시험 삼아 앞차에 가까이 차를 붙여봤지만(더 가까워져야 작동하는 것인지…), 경고 반응조차 없어 확인이 안 돼 아쉬웠다.

어느덧 반나절 동안 힘차게 달리던 호박 마차의 바퀴가 멈춰 서고, 12시가 지나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현실로 돌아와 벨라를 바라보았다. 동생 이보크와 형님 레인지로버 스포츠 사이에 고민하던 이들의 가려운 점을 긁어주고, 레인지로버 라인업을 완성하며 프리미엄 중형 SUV의 진수를 보여준 벨라.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이 있듯, 벨라가 미래의 레인지로버 가문을 이끌어갈 주인공이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LOVE  디자인, 성능은 물론, 이름까지 고급지네

HATE  럭셔리한 건 인정. 그래도 이 가격은 좀…

VERDICT  프리미엄 중형 SUV의 끝판왕


md.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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