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로메오 스텔비오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는 섹시하니까 지루한 SUV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외려 그런 사람들이 실물을 보고 나면 엄청나게 흥분하며 벌떡 일어서곤 한다. 그러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알파로메오 스텔비오는 담백한 2박스 구성의 최신 소형 럭셔리 크로스오버다. 하지만 뿜어내는 기운은 충분히 남다르다. 개성 넘치고 열정적이며 당당해 보인다. 세상엔 사람을 매혹시키는 차와 사람을 매혹시키는 빠른 차가 있는데, 이 차는 후자에 해당한다. 게다가 우아하기까지 하다. 젠장, 스텔비오는 정말 멋지다.    

위협적인 얼굴과 삼각형 방패 모양 배지는 이 차의 존재 가치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우람하지만 팽팽한 옆모습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빨라 보인다. 살짝 부풀어오른 패스트백과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뒤쪽 해치는 다소 복잡하면서도 멋있어 보인다. 기능 때문에 멋을 포기하지 않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품답다. 스텔비오를 타고 나갔을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할 일은 절대 없다. “음… 뭐, 괜찮네요.” 오히려 그 반대다. 터져 나오는 환호를 기대하시라.   

세세하게 살펴보면 더 훌륭하다. 줄리아 세단과 알파로메오 조르지오 플랫폼을 공유해 휠베이스(2810밀리미터)는 같지만 길이는 51밀리미터 더 길고, 너비는 약 25밀리미터 넓다. 흥미로운 점은 그 큰 덩치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줄리아는 단박에 소형 세단이라는 느낌을 주었는데 스텔비오는 큼직한 크로스오버의 무게를 가누면서 그 민첩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처럼 정력적인 주행감각은 뒷바퀴에 비중을 둔 AWD 플랫폼의 역할이 크다. 엔진 힘을 100퍼센트 뒷바퀴로 보낼 수 있고, 트랙션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선 최대 60퍼센트의 힘을 앞바퀴로 보낸다.    

어느 습하고 질척거리는 날 테네시주 나체즈 트레이스 파크웨이(Natchez Trace Parkway)와 인근 굽잇길에서 스텔비오는 핸들링 성능을 마음껏 뽐냈다. 그 잠재력은 감히 베스트 핸들링 SUV로 꼽아도 될 정도였다. 최근 우리는 최고 성능·최고급 사양의 포르쉐 마칸과 메르세데스 GLC, 재규어 F 페이스를 테스트했다. 만약 기본형으로 엄격하게 평가했다면 알파로메오가 가장 운전하기 즐거운 크로스오버로 꼽혔을 것이다.    

앞뒤 방향으로 놓인 2.0리터 4기통 터보 엔진은 280마력과 42.3kg·m의 힘을 ZF 8단 자동변속기로 내보낸다. 타이어는 235/60R18 규격의 사계절용 컨티넨탈 크로스컨택트 LX 스포트다. 알파로메오의 주장에 따르면 출력과 토크는 해당 클래스에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업체가 제시한 0→시속 97킬로미터 가속시간 5.4초 역시 동급 최고다. 분명 라이벌들을 압박하는 수치다. 이들 중 다수는 6초의 벽을 깨지 못했다.    

4기통 터보 엔진에 단점이 있다면 엔진 회전속도가 너무 부드럽게 오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짐작보다 훨씬 빨리 레드라인에 도달한다. 수동변속 모드에선 한계 회전수인 5500rpm까지가 순식간이다. 3200rpm 무렵의 엔진음은 이 장엄한 노래가 끝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훌륭하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시치미 뚝 떼고 연주를 멈춘다. 비극적이다. 하지만 100분의 1초보다 빨리 기어를 바꾸는 ZF 자동변속기 덕분에 신속하게 다음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알파로메오 DNA 시스템은 다이내믹(D), 뉴트럴(N, 노멀), 어드밴스드 이피션시(A, 연료효율)의 3가지 주행모드를 제공한다. 스텔비오의 뉴트럴 모드는 그저 직선도로의 장거리 주행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도로가 구불구불해지면 이내 스티어링 반응이 느슨하고 헐겁게 느껴진다. 다행스럽게도 다이내믹 모드가 이를 보완한다. 서스펜션 세팅엔 실질적인 변화가 없지만 트랙션 컨트롤이 조금 더 레이싱에 가깝게 반응하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스티어링 반응도 빨라진다.  

타이어 사이드월이 두툼해지면 주행감각이 한결 차분해진다. 19인치 휠을 쓴 루소 모델이 그렇다. 성능을 고려해 20인치 휠을 쓴 스포트 모델보다 안정감이 크다. 휠 크기 또는 일반이나 스포트 모델에 관계없이 앞 바퀴의 더블위시본과 뒤쪽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묵묵히 ‘열일’을 한다. 덕분에 스텔비오는 나체즈 트레이스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능숙하게 질주했다. 동시에 탑승자 머리나 차체 흔들림은 최소한으로 억제했다. 1837킬로그램의 무게가 무색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앞쪽 13인치 4피스톤 브렘보와 뒤쪽 12.5인치 1피스톤 캘리퍼로 성능을 강화한 ABS 브레이크 시스템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테네시의 축축하고 미끄러운 아스팔트 직선도로를 고속으로 달리다가 급제동을 시험해봤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차는 ABS가 트랙션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불편한 충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텔비오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급제동하는 동안에도 브레이크 페달엔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스텔비오의 운동성능은 2박스 SUV보다는 커다란 스포츠세단에 더 가까워 보인다(50:50 무게배분과 11.8:1 조향비의 스티어링 덕분이다). 게다가 요즘 SUV에 유행처럼 쓰이는 지형반응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눈길이나 미끄러운 노면에서 능숙하게 대처한다는 게 알파로메오의 주장이다. “프리미엄 세그먼트의 차로 오프로드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파로메오 북미 지역 디렉터 피터 호게빈의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오프로드를 찾는 걸 말리고 싶진 않아요.”    

꽁무니에 불이 붙은 것처럼 산길을 달리지 않을 때는 어떨까? 길고 쭉 뻗은 도로를 달릴 때는 DNA를 ‘나투랄레(Naturale)’에 두고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킨 뒤 진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딱 좋다. 거리를 한가롭게 오가는 모습엔 ‘멋짐’이 뚝뚝 떨어진다. 진짜 이탈리아 남자 같은 느낌이다.    

실내공간은 가볍게 손이 닿는 모든 표면이 푹신하고 고급스러운 촉감을 준다. 알루미늄 장식은 전기면도기 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기분이다. 유들유들하면서도 예리한 느낌이다. 뒷좌석은 상당히 넉넉하다. 등받이가 파인 앞 의자 덕분에 키 180센티미터인 운전자 뒤에 비슷한 체격의 사람이 앉아도 충분한 무릎 공간이 나온다. 하지만 앞 의자 밑부분에 정강이가 닿고 발을 둘 공간도 마땅치 않다. 섹시하게 떨어지는 지붕 선 때문에 키 큰 승객에겐 머리 공간도 좁다. 그래도 동급 최악의 수준은 아니다.    

편의사양은 어떨까? 6.5인치 스크린이 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유저 인터페이스는 짐작과 달리 FCA의 U 커넥트 대신 마녜티 마렐리의 것을 쓴다. 상대적으로 더 직관적이지만 스크린 그래픽은 아우디나 BMW의 시스템에 비해 예리함이 떨어져 보인다. 기어박스 주변은 몇 가지 버튼과 조그 다이얼 정도만 있다. 아주 기본적인 레이아웃인데 다만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기어레버 앞에 마련된 수납공간엔 지갑 두 개 정도가 빠듯하게 들어간다. 운전자 왼쪽 무릎 부근에 있는 큼지막한 수납공간으로 만족할 수밖에 불만은 몇 가지 더 있다. 저단 기어로 정속 주행할 때 2500~2800rpm 즈음에서 불편한 엔진 소음이 생긴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경로를 안내할 때 음악 소리를 살짝 줄이는 게 아니라 완전히 끊어버린다. 스티어링휠은 기울기와 길이를 수동으로 조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럭셔리 SUV는 전동 조절 장치를 쓴다. 스톱&스타트 시스템은 반응이 느리고 불편하게 덜컹거린다(다행히 아예 끌 수 있다). 

페라리 느낌의 알루미늄 패들시프트는 촉감까지 섹시한데 기어레버는 모양이 무던하고 플라스틱 느낌도 강하다. 방향지시등과 와이퍼를 작동시킬 때마다 패들시프트가 손에 걸리는 것도 불만이다. 패들시프트의 아름다운 표면에 손가락을 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얘기인가? 하지만 이 모든 건 훌륭한 역동성과 아름다운 겉모습, 뛰어난 인체공학적 설계가 한데 담긴 차에 대한 사소한 트집일 뿐이다. 


md.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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