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남한산성’ 탄탄한 연기력과 묵직한 역사의 울림..


 '남한산성'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


영화 <남한산성>.

황동혁(감독) / 이병헌 / 김윤석 / 고수 / 박해일 / 박희순 / 조우진


화려한 라인업과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개봉전 부터 많은관심과 수많은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남한산성은 역사적 사실인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 이기에 그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가 기대되는 추석 시즌 개봉을 앞둔 작품이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인조가 남한산성에 47일 간 피신했다가 결국 청나라에 굴욕적 항복을 그린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인조를 국왕으로 추대한 1등 공신들 중 한 명인 정치가이자 학자 최명길과 김상헌과의 대립을 그려낸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이끌어내자는 '주화론'을 내세운 최명길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척화론'을 내세운 김상헌의 대립 과정을 보여준다. 

스토리는 정통 사극의 형태를 따른다. 영화는 원작과 역사의 흐름을 충실히 기술한다. 특별한 창의성을 가미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여 묵직하게 전개해나간다. 그래서 일까. 몇몇 관객들은 '다큐멘터리 같다'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다큐멘터리 같아 지루하다고 여기는 관객들도 많겠지만, 필자는 서사적인 연출 스타일이 좋았다. 과장 없이 표현됐기에, 원작이 지닌 묵직한 분위기가 곧잘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픽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이 부분에서 다소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140분 가량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과 픽션적 매력이 없는 연출 방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배우들의 활약 덕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인물들을 클로즈업하고 그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대사를 집중 조명한다. 배우들의 내면 연기는 최고이다. 특히, 최명길 역을 맡은 이병헌의 눈물과 입 밖에 옅게 나온 침, 휴머니즘을 안은 부드럽지만 때로는 강직한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남한산성>은 영화다운 작품이라기보다는, 역사를 답습하는, 원작(책)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 역사를 보다 편하고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학습 자료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는 거의 없다는 말이 편견보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써, 원작을 꼭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훈의 소설과 에세이를 많이 접하진 못했으나, 그의 필력이 '훌륭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정도라는 건 알고 있다. 그의 <남한산성>을 읽어봐야겠다.

전체적인 느낌은 좋았다. 묵직한 분위기, 병자호란의 쓰디쓴, 참담한, 비극적인 결말처럼 영화를 이끄는 냉랭한 분위기가 잘 반영됐기 때문이다. 재미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아쉬운 평이 잇따를 것 같다.

100쇄를 찍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소설은 산성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말의 전투’를 그리는데 이게 스크린에서 어떤 스펙터클로 구현될까. 다른 하나는 여지없는 패배의 기록이 상업영화 틀 안에서 관객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까.

<도가니>,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은 돌아가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는 정공법으로 묵직하면서도 기품있는 이야기의 성을 세워 올렸다. 영화는 산성 앞에 진을 친 청나라 부대 앞에서 사신으로 선 최명길(이병헌)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한다. 다음 장면에서는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에 뱃사공을 만나 적군에게 길을 인도하겠다는 그를 칼로 베는 김상헌(김윤석)이 등장한다. “치욕은 견딜 수 있지만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의 외침과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겠다”며 항전을 주장하는 김상헌의 결기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것임을 선명히 내보인다.


영화 <남한산성>.

영화는 실제로 2시간20분의 상영시간 동안 옆길로 새지 않고 치열하고 팽팽한 말의 전투를 보여준다. 산성 안 행궁 등 주요 무대의 연출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갈수록 숨통을 조여오는 청의 압박과 이로 인해 치열해지는 갈등은 온전히 주요 인물들의 얼굴과 입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싸우려는 자와 멈추려는 자, 그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자들의 넘치는 말 속에서 왕(박해일)은 길을 잃어가고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사신을 통해 위협하는 말의 수위가 올라가며 극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영화 <남한산성>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대사들의 향연에 스크린은 온도를 입힌다. 그 온도는 온기가 아니라 추운 냉기다. 어전에서 다투는 인물들의 펄펄 끓는 말의 열기가 무색하게 인물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계속해서 나온다. 바깥 장면에서 인물들의 수염 위에는 언제나 허연 성에가 끼어 있고 백성들 역시 추위로 인해 고통받거나 죽어가는 모습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해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는 프롤로그 문장처럼 물리적 추위와 고립무원에서 느끼는 지독한 두려움이 서늘하고 냉랭한 화면을 통해 관객의 옷깃까지 스며든다. 

싸늘한 기운은 전투 장면에서 극대치가 된다. 차마 전투라고도 부르기 힘든 옹색하고 처참한 몇번의 싸움에는 여지없이 눈이 내린다. 창백한 눈발 아래서 변변치 않은 장비와 체력으로 청군에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군사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영화 <남한산성>.

영화는 김상헌의 마지막 선택 정도를 제외하고는 마지막까지 원작의 큰 얼개를 벗어나지 않는다. ‘삼전도의 굴욕’까지 격서를 전하는 날쇠(고수)의 분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야기의 곁가지 없이 묵묵히 앞으로 간다. 극적인 반전이나 뭉클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헛헛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긴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은 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 덕이다. 

사극 첫 연기라는 게 안 믿어질 만큼 능수능란한 김윤석과 조선에서 가장 무능한 임금으로 일컬어지는 인조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하는 박해일, 그밖의 모든 배우들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연기로 영화를 든든히 받친다. 특히 ‘주화파’로 낙인찍혀 훗날까지 비난받은 최명길의 고뇌와 진심을 오로지 대사와 눈빛으로만 설득해낸 이병헌의 연기는 찬사만으로 모자랄 지경이다.


'남한산성' 예고편. 네이버TV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감정을 누른 채로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김훈 특유의 긴 호흡의 대사가 다소 건조하게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그는 묵직하게 역할을 해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조(박해일 분) 앞에서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죽음을 피해야한다”며 청과 맞서 싸우기를 주장한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분)과 팽팽하게 대립한다. 영화는 추석 연휴를 겨낭하며 다음 달 3일 개봉한다.

아래는 26일 남한산성 최명길 역을 맞은 이병헌과 함께한 인터뷰 내용이다.
 
질문‘남한산성’ 완성본을 보니 어떤가.
답변“그동안 한국 영화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쏠려있었는데 다른 영화가 나온 것 같다. 뿌듯하다.” 

질문어떤 점에서 다른 영화인가.
답변“연출부터가 그렇다. 보통은 성공의 역사를 다루는 게 흥행을 위해 좋다. 치욕적이고 암울한 걸 그린 것부터가 용감하다. 또 영화는 관객수 같은 것을 의식하지 않고 시종 담담하고 차분하다. 통쾌하지 않고, 보는 내내 힘들고 답답할 수 있는 영화다. 답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를 그리고 있다.” 

질문흥행엔 도움이 되진 않을 수도 있는데.
답변“많이들 숫자로 영화를 이야기 한다. 내가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숫자가 영화 제목과 거의 동일하게 이야기된다. 하지만 배우가 영화를 선택할 때는 숫자에 대한 생각이 좀 덜하다. 이야기가 얼마나 울림을 주는가, 얼마나 꽂히느냐가 중요하다.”


병자호란에서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47일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

질문최명길이란 인물을 어떻게 이해했나.
답변“이 시나리오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소신이 너무 다른 두 명을 치우침 없이 그렸기 때문이다. 보통은 읽는 사람이 한 쪽으로 설득당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재미있고 통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그렇지 않았다. 이 사람 얘기를 들으면 이쪽이 맞는 것 같고, 다른 쪽을 들으면 또 그랬다. 100번은 왔다갔다 한 것 같다. 나라를 위한다는 큰 뜻은 같지만 대립하고 있는 두 사람이 정말 50 대 50으로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캐스팅 제의가 왔으면 김상헌(김윤석 분) 역할도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질문역사적으로 최명길은 인조반정으로 광해를 몰아냈던 인물이다. 5년 전에는 광해를, 지금은 최명길을 연기한 느낌은 어땠나.
답변“배우가 연기를 할 때 그 인물과 생각이 100% 일치해서 하지는 않는다. 이해가 안되는데 억지로 연기하는 것도 아니다. 설득 당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연기한다. 두 인물은 모두 설득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광해를 내쫓은 최명길을 연기한 것은 아이러니다.” 

질문 영화가 현재 한반도 정세와 비슷한데.
답변“영화를 보고 났는데 누구 편인지 알 수 없는 것, 내가 그 때 왕이었어도 최명길과 김상헌 중 누구 손을 잡아줬을지 판단할 수 없었던 게 너무 슬폈다. 영화를 보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흥행 면에서 문제가 좀 있을 수도 있는 점이지만, 반대로 그게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병자호란의 상황은 현재 대한민국과 너무 흡사하다. 지금도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것과 공교롭게도 맞닿아있다. 그런데 늘상 그래왔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 

질문
‘광해’에 이어 ‘남한산성’까지 영화가 정치·외교 상황 등에 비추어 해석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답변“영화가 시류를 타는 것을 의식하지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는 편이다. 영화가 꼭 시대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판타지나 SF 영화는 어떻게 하나. 아무튼 ‘남한산성’이 시대에 많이 닿아있는 건 맞다.” 

질문상대 배우 김윤석의 연기는 어떻게 봤나.
답변“우리 둘 다 왕을 향해 대사를 했기 때문에 촬영할 때는 나란히 있었고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대사의 떨림, 소리만 듣고 느꼈는데 열이 가득한 배우였다. 한번 부딪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정이 달아올라서 ‘자기 자신도 어떤 대사를 하는지 모르면서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열을 쏟아내더라.” 

질문
감독에게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인가.
답변“질보다 양으로 간다. 예를들면 코미디 장르를 찍을 때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데 질이 중요하진 않고 그저 많이 낸다.(웃음) 감독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 건 맞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딱 한 군데 바꿨다. 무엇보다 감독이 똑똑해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이 영화만큼 모니터링을 안 한 영화는 처음이다.” 

질문후속으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다.
답변“쉬어본 적이 별로 없다. ‘남한산성’ 끝나고 드라마까지 두세달 쯤 비는데 그때 미국 영화 하나 찍자고 미국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그러다 쓰러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거절했다.”(웃음)


md.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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